ㆍ악기장, 음악·미술·건축가 모여 상상만 하던 악기 직접 제작
ㆍ공으로 새 악기 만들기도… "인간이 행복해지는 과정 담았다"
다큐멘터리는 보통 있는 사실을 토대로 만들어진다. 나름의 주제의식을 담아 사물과 사람을 촬영하고 영상을 편집하지만 어디까지나 이미 존재하고 있는 그림들이다. 이 같은 고정관념에 반기를 든 작품이 등장했다.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3부작으로 방송된 EBS <다큐프라임>의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편이다.
프로그램 제작진은 다큐 제작 기간에 주제로 삼은 악기를 직접 만들었다. 그것도 이제껏 존재하지 않았던 상상 속의 악기를 만들�! �다. 새로운 방식으로 소리를 내고 형태와 재질 모두 기존 악기들과 다른 별난 악기였다. 자성 페인트를 묻힌 톱니바퀴들은 전기코일 주변을 맞물려 돌아가며 일렉 기타의 픽업(현의 진동을 전기신호로 바꿔주는 장치)과 닮은 듯 다른 원리로 굉음을 만들어냈고, 장난감 권총이 쏘아대는 비비탄은 실로폰 건반을 때리며 맑은 타격음을 냈다. 있는 사실을 줍는 게 아니라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EBS 다큐프라임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의 백경석 PD(오른쪽)와 사운드아티스트 권병준.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프로그램을 연출한 백경석 PD는 EBS 음악 프로그램의 터줏대감이다. 2012년 EBS <다큐프라임> '음악은 어떻게 우리를 사로잡는가' 편으로 그해 한국PD연합회에서 주는 이달의 PD상을 수상하는 등 음악 프로그램 제작 실력을 인정받은 바 있다. 그의 두 번째 음악 다큐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1차 재료인 악기에 초첨을 두었다.
백 PD는 전통 악기의 대표선수격인 피아노의 변형 작업을 통해 악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얻고자 했다. 새로운 소리를 만드는 물건들에 관심이 많은 미디어 아티스트 권병준씨에게 이 같은 제안을 했고, 권 작가는 더 큰 프로젝트로 화답했다. 악기 제작자는 물론 작곡가, 미술가, 디자이너 등 예술 영역에 속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음악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을 것 같은 건축가와 조경 전문가가 �! �께하는 악기 만들기 및 연주 프로젝트를 진행하자고 한 것이다.
기존의 음악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이번 프로그램 제작 도중 만들어진 악기들이 내는 소리는 음악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 정확한 음정을 가늠하기가 힘들고 박자를 정확하게 연주하기가 까다롭기 때문이다. 권 작가는 "그럼에도 의미가 있었던 것은 기존 음악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악기를 만드는 과정 자체가 악기보다 더 악기 같고 음악보다 더 음악 같은 작업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권 작가가 가장 애착을 보이는 악기는 하이브리드 피아노이다. 이 악기는 기존의 피아노가 액션이라는 나무 막대가 현을 때리고, 그 진동이 피아노를 둘러싼 음향판에 전달돼 울리는 방식을 거꾸로 뒤집었다. 음향판을 먼저 울리게 한 다음에 현이 공명하도록 한 것이다. 어떤! 소리가 날지 몰라 두려움도 있었지만 제법 근�! ��한 소리가 나오자 근심은 흥분으로 바뀌었다.
악기를 만들면서 겪은 시행착오는 오히려 완전히 다른 차원의 악기를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되기도 했다. 모터로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바람 소리를 내고 스스로 굴러다니는 공 모양의 공깃주머니를 만들려던 건축학도 팀은 난관에 부딪혔다고 한다. 공깃주머니가 무거워 소형 모터로 구르게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벽에 부딪히자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공 모양의 공깃주머니는 고정시키되 대신 주머니가 빛에 반응해 수축과 팽창을 하도록 개조한 것이다. 빛에 반응하는 공이라는 뜻에서 지어진 이 새로운 악기의 이름은 '빛이볼'이다.
백 PD는 "악기의 구조나 원리는 악기가 만들어질 당시 사람들이 좋아하는 소리와 음향을 좇아온 결과"라며 "악기는 추상적인 소리통이 아니라 악기를 만드는 장인과 음악가, 청중의 열망이 새겨진 구체적인 피조물"이라고 말했다.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것도 만들어질 수가 없다는 얘기다. 백 PD는 또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있었기에 우리의 음악, 악기의 역사가 다채로워질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세상에 없던 악기를 만들려고 한 궁극적인 의도는 무엇일까. 백 PD는 정말 세상에 없는 악기를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저 악기가 온전히 이해되길 바랐다고 설명했다. "예술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위대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 쓸데없는 호기심이 저는 참 즐겁습니다. 결국 이 프로젝트는 악기 만드는 과정! 을 통해 인간이 어울리고 행복해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 것이었습니다. 하하."
Source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409222104055&code=960801